인생은 평생 공부다/윤동주 시 해석

초 한 대 - 윤동주 해석 해설, 사명은 꺼지지 않는 불

한이 HanE 2024. 11. 2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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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집 해설 해석 서평 느낀점 한이
초 한 대 윤동주 시 해설 해석

 

 

초 한 대

              윤동주

 

초 한 대-

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품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1934.12

 


 

*주관적인 해설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시를 처음 접하면, 이게 무슨 소릴까 싶다. 윤동주 시인의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을 말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신앙고백이다. 나도 나의 첫 작품이 종교적이다. 그래서 세상에 드러내는 것을 조금 꺼렸다.

 

 '이런 작품도 좋아할까? 싫어하면 어쩌지?'

 

 허나, 사람들은 이를 통해 위로와 공감을 받기도 했다. 윤동주 시인은 어찌 서슴없이 이렇게 표현했을까.

 

▼  방 안을 채우는 향내

1연

초 한 대-
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맡는다.

 

 초에 불을 켰다. 빛이 밝아지면서 초가 타는 향이 난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은 '향내'를 맡는다고 했다.

 

▼ 깨끗한 제물이 무엇일까

2연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 광명 光明  : 1. 밝고 환함. 또는 밝은 미래나 희망을 상징하는 밝고 환한 빛. 2. 부처와 보살 등의 몸에서 나는 빛. 3. 번뇌나 죄악의 암흑에 신앙상의 지혜와 견해를 갖도록 밝게 비추는 일.

 성경은 크게 1부 구약, 2부 신약으로 나누어진다. 이 기준은 예수님의 탄생으로 나누어진다. 2부에서는 중요한 인물이자 신이 나타난다. 그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기지 전은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의 등장까지를 의미한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무지하게 아끼셨다. 아끼는 만큼 선지자를 통해서, 이방 나라를 통해서, 노예 생활을 하게 할 정도로 훈육을 했다. 하지만, 사람은 무색하리만큼 사람이었다. 반성의 기미도, 죄악감도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더 당당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했는데."

 

 "니가 뭔데."

 

 "해줘. 내놔."

 

 뻔뻔해지는 그들을 보고, 화도 나고 애도 타지만,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완전히 죄 속에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그들이 지옥으로 가는 것보다 영생을 사는 삶을 살았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죄 없는 하나뿐인 깨끗한 제물,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낸다.

 

▼ 죽음과 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을 보며 안타까워하셨던 예수님

3연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

 

  • 심지 1  : 1. 등잔, 남포등, 초 따위에 불을 붙이기 위하여 꼬아서 꽂은 실오라기나 헝겊
  • 심지 2 地 : 마음의 본바탕.
  • 심지 3 志 : 마음에 품은 의지.

 

성경을 읽다 보면, 신도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마찬가지다. 죄와 죽음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며 불쌍히 여기셔서 눈물을 흘렸고, 자신이 죽음으로써 피를 흘렸다. 실제로 예수님이 불타서 죽진 않았지만, 제사는 불을 태워서 진행했기 때문에 윤동주 시인이 '태웠다'라고 표현한 듯하다.

 

 현대에 들어서 기독교는 '제사'가 없다고 오해를 하지만, 조상에 관한 제사가 없었을 뿐,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경건한 제사는 구약성경에 존재했었다. 늘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고귀한 제사였는데 예수님의 피와 살로 제물이 된 후로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렇게 끝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예수님을 통해서 기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다시 돌아보니 나의 방, 그리고 책상에는 초 한 대

4연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윤동주 시인은 다시 책상을 바라보니, 책상에는 흔들흔들거리는 촛불이 하나 있었을 뿐이었다.

 

 아마 윤동주 시인은 기도를 드리지 않았을까. 가슴이 불타는 기도를 홀로 했던 거 같다.

 

 초가 아롱거리는 것을 보며 '춤을 춘다'라고 표현했다.

 

▼ 저 멀리 도망가거라, 암흑아

5연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품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어둠은 포식자인 매를 보고 도망하는 피식자 꿩 같이 도망친다.

 

 윤동주 시인은 '나의 방에 품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윤동주 시인이 "기도했다"라고 추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향내는 보통 "기도의 향기"라고 한다.

 

 구약성경에서는 소, 비둘기 등을 태웠는데 사람 입장에서는 맛있는 고기 굽는 냄새가 나지 않았을까. 물론 그 주변에 피비린내도 있었겠지만.

 

 예수님이 자신을 희생해 제사에 쓰이는 제물이 되었으니, 우리는 기도만으로도 이를 충족시킬 수 있다. 그래서 "기도의 향기"라는 표현을 쓴다.

 

 윤동주 시인은 이때 기도의 힘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 않았을까.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성령님이 임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와 동시에 시를 써야 한다는 사명도 같이 받은 것이 아닐까.

 

 


- 편집프로그램 : 미리캔버스

- 사용된 글꼴 : 대표이미지(the도담m, th0e나무l), 시(독립서체 윤동주 별헤는밤, Will&Grace)

- 사전 :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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