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 간다
윤동주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1941.05
저번에는 윤동주의 습작시집 [창]에 있는 <나무>와 <그 여자>에 대해 해설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되어있는 <눈 감고 간다>를 보려고 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에 자주 언급되는 소재가 있다면 바로 태양, 별, 아이, 밤, 눈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였습니다. 배경을 생각하면 자주 언급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1941년에는 사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었습니다.
윤동주 시를 감상할 때에 또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윤동주 시인의 종교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하나님을 믿고, 가정 또한 기독교 집안이었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종교를 알고 나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낮과 밤, 하루를 사랑하는 사람들아
(1연)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태양과 별.
이 둘을 본다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는 아침과 밤이 떠올랐다. 해가 뜨는 것과 별이 떠있는 어둑한 밤하늘을 보는 것, 그것은 하루가 지난다는 의미다.
일제강점기 때 하루는 어떤 의미였을까. 목숨이 충분히 오늘내일할 수도 있는 상황들이 여럿 있었을 것이다.
내일의 내가 저기 일본 경찰에게 잡혀가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은 어른을 부르는 것이 아닌,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는 문학 활동도 감시를 받았기 때문에 '어른'이라고 표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1연을 이렇게 보았다.
'내일을 희망하며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아'
▼ 어두운데 눈까지 감으면 어떻게 가나요
(2연)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앞에서 사람들을 불렀지만, 밤은 어두웠다. 나날이 괴롭힘은 더더욱 심해졌다. 이를 직접 목격하거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좌절하거나 포기하려고 한다.
사람은 특히 시각과 청각에 의해 공포를 많이 느낀다.
그러니 윤동주 시인은 눈을 감고 가라고 한다. 차라리 안 보는 편이 앞을 전진하기에는 수월하기 때문이다.
▼ 모든 씨앗이 결실을 맺지 못하더라도, 헛되지 않은 수고
(3연)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날도 어두워서 앞이 보이질 않는데 거기다 눈을 감고 가는 중에 씨앗을 뿌리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나는 3연을 보면서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성경 [사복음서]에 '씨'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마태복음 13장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드는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했다. 자신의 목숨을 바치더라도 함께 투쟁할 동지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다.
몇 명이나 설득할 수 있었을까. 눈앞에 옆집이 썰려가기도 하고, 다른 집에서는 고발까지 하는 상황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위한 씨앗은 계속 뿌려야 했다.
왜냐하면 좋은 땅에 뿌려진 씨도 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이 너무나도 간절했었다.
▼ 견디고 참고 인내하다가 중요한 순간에는 놓치지 않는
(4연)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 발뿌리 : 1. 발끝의 뾰족한 부분. 2. 어떤 물체의 기초나 아랫부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채이다 : 차이다
- 와짝 : 1. 갑자기 많이씩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모양 2. 기운이나 기세가 갑자기 커지는 모양 3. 여럿이 달라붙어 일 따위를 단숨에 해치우는 모양
윤동주 시인은 눈을 감고 가라고 하지만, 이럴 때는 눈을 번쩍 떠라고 한다.
그때가 언제냐면 발이 돌에 걸렸을 때다.
어찌 보면 몰래 조용히 행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걸렸을 때를 의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는 정신을 번뜩 챙기고 꽉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윤동주 시인의 동시만 해설하다가 오랜만에 윤동주 시대적 배경이 깊은 시를 해설했는데 마음이 착잡했다.
그가 광복 후까지 살아있었다면 어떤 시가 나왔을까, 그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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