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윤동주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1936.12
문학을 해설한다는 것은 가히 쉬운 일은 아니다.
문학을 더 풍부하게 해설하려면, 우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있어야 하며, 본인이 겪은 경험도 많아야 하고, 표현력을 위해 단어들을 습득해야 하며, 사람들에게 쉽게 전할 수 있는 문장력이 필요로 하다.
시를 해설하면서 난감한 상황이 있다면, 모르는 분야가 나왔을 때다.
어느 책을 접하든, 어느 기사를 접하든, 심지어 나무위키를 보아도 "이 정보가 제대로 된 정보가 맞을까?" 의문이 들 때다. 바로, 지금 이 시를 해설하면서 느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는 윤동주 시인의 삶에 대해서 완전히 알 수도 없고, 또한 윤동주 시인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다. 이 책, 저 책에서 나오는 것들을 참고할 뿐이지만, 특히 가족에 관한 것은 책을 접해도 잘 나오질 않는다. 때문에 지금 <편지>에 나오는 '누나'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다. 윤동주는 7남매지만, 위에 두 누나가 요절을 했다. 나는 어린 나이에 요절한 누이들을 이 시의 대상으로 보고, <편지>를 해설할 예정이다.
들어가기 앞서, 박목월 시인의 <하관>을 봤으면 좋겠다.
하관
박목월
관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님!
불렸다.
오오냐 나는 전신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고 소리가 들리는 세상.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박목월 시인의 <하관>이 떠올랐다. 하관에서도 먼저 떠난 이를 그리워하며, 살아있는 이 현실과 저세상의 차이를 두며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 두 시인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감상했다.
윤동주 시에서 현실 부분
박목월 시에서 현실 부분
윤동주 시에서 먼저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행동, 상황, 감정
박목월 시에서 먼저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행동, 상황, 감정
< 윤동주 >
(1연)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 박목월 >
(1연)
관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했다.
윤동주 시에서 현실에서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라며 알린다. 그러고는 편지를 부치려고 한다. 박목월 시에서도 관을 내리고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주고 옷자락에 흙을 받아 뿌려주고 동생의 관을 묻었다.
< 윤동주 >
(2연)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 박목월 >
(2연)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님!
불렸다.
오오냐 나는 전신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고 소리가 들리는 세상.
윤동주는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는다고 했다. 글도, 우표도 없이 편지를 부치려고 한다. 이유는 누나가 간 나라에는 눈이 오지 않는다고, 눈을 보내려고 한 것이다.
우선, 우표를 붙이지 않으면 편지를 부칠 수가 없다. 윤동주 시인은 왜 우표를 붙이지도 않고 그러는 걸까? 거기다 우리나라는 겨울에 눈이 내린다. 그러면 누나가 동남아라도 간 것일까? 만일 누나가 동남아로 갔다면, 편지 내용과 우표를 붙이고 '이 편지가 무사히 도착하길 바란다'라고 쓰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는 그 당시 일제강점기였다. 다른 나라로 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누나라는 사람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이 세상이 아닌 것으로 해석했다. 윤동주의 종교를 고려한다면, 아마 그곳은 천국일 것이다. 그렇기에 더운 날씨도, 추운 날씨도, 비도, 눈도, 바람도 오지 않는다. 누나라면 윤동주보다 나이가 더 많을 것인데,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한 자 한자 글을 눌러써서 눈과 함께 보낸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편지>에 나오는 누나가 세상 일찍 요절했다면, 글을 써서 보내도 읽지 못할 것이고, 우표를 부쳐도 갈 곳 없어 편지는 방황할 것이다. 눈만 한 줌 넣어 보내면 마음이라도 보내지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부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눈이 오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박목월은 누나가 아닌, 남동생을 잃었다. 그리고 그를 꿈에서 만났다. 동생이 꿈에서 형님!이라고 불렀다. 박목월은 꿈이지만, 온 힘을 다해 "오오냐!" 말했지만, 꿈이기에 그에게 닿지 못한다. 그리고 꿈에서만 동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박목월은 꿈에 깰 때 자각한다.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이라고.
세상을 먼저 떠난 이를 꿈에서 만난다는 것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하다. 그 꿈에서 영원히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어디로 갔느냐"라고 묻고 싶지만, 동생이 이미 세상을 떠난 것을 알기에 더 그리워져만 간다.
남동생이 살아있을 때, 그의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 더는 못 볼 얼굴, 그리고 더는 듣지 못하는 목소리, "형님!"이라고 꿈에서 자기를 불러주는데 자신의 대답은 닿지 않는 그곳. 열매가 떨어지면 툭 소리가 나는 현실에 살고 있는 자신은 동생이 나날이 갈수록 그리워질 뿐이다.
기쁨은 나눌수록 더 기쁨이 되고, 슬픔은 나눌수록 덜 슬퍼진다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닌 거 같다. 때로는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머릿속으로는 잘 알지만, 마음은 여전히 떠났다는 것을 인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주변에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끼리는 공감이 되어 위로가 되지만, 이러한 일을 전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서는 위로보다는 한심함과 미련함으로 보일 수도 있다. 스스로 아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시련과 추모의 시간이 걸리는데 보통 사람들이 볼 때는 빠르게 감정을 해결하고 일어나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보기 때문에 더 힘들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랬기에, 내 감정을 애써 외면하고 무시해 온 채 살았다가 더 큰코다치기도 했다. 그 뒤로는 문학에서 많은 위로와 영감을 얻었다. 보고 싶다는 말을 수백 번 해도 하소연뿐이고, 편지로 보고 싶다 쓰더라도 그 마음이 온전치 전해지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리워하는 마음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담아 그림과 글을 쓰고 있나 보다.
- 제목 및 시인 이름 폰트 : 독립서체 윤동주 별 헤는
- 시에 쓰인 폰트 : 나눔손글씨 할아버지의나눔
- 디자인 편집 프로그램 : 미리캔버스
+2023.11.15 가독성을 위해 폰트 크기 및 글꼴 변경, 내용을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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