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1
윤동주
소리 없는 북
답답하면 주먹으로
뚜다려 보오.
그래 봐도
후-
가아는 한숨보다 못하오.
1936.3
가슴 시는 1, 2, 3이 있다. 그중에 나는 1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 먼저 해설해 보았다. 이 시를 제대로 느낀다면,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시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현대에도 아직 이러한 습관이 남아있어서다.
◆ '소리 없는 북'이 무엇일까?
(1연)
소리 없는 북
답답하면 주먹으로
뚜다려 보오.
소리 없는 북이란 무엇일까? 문장을 읽다 보면, 답답하면 주먹으로 두드려 보라고 되어있다. 무얼 두드리라는 걸까? 북? 엉덩이? 배?
정답은 가슴이다. 제목에 나와있다. 소리 없는 북은 가슴이다. 왜 가슴을 소리 없는 북이라고 표현했을까?
주먹을 쥐고, 가슴팍을 두들겨보자. 무슨 소리가 나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북소리처럼 경쾌하게 나는가? 옛날 전쟁에 사용하던 북소리처럼 둥둥- 무거운 소리가 나는가?
거인이 아닌 이상 그런 소리는 아닐 것이다. 기껏 해봐야 방 하나 정도의 울림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세게 쳐야 들리는 소리다.
◆ 왜 가슴을 두드렸을까?
이 또한 시에 답이 있다. 바로 '답답해서'다.
고민거리가 있는가? 그 고민거리가 무엇인가?
성적이 잘 안 나와서? 하는 일이 잘 안 풀려서?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풀 수가 없어서?
다시 한번 가슴을 두들겨 보라.
답답함이 조금은 해소가 되는가?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림프절이 있어서 혈액순환 정도는 되려나...?
요새는 답답하다며 가슴을 치는 경우는 잘 없지만, 내가 청소년 때까지만 해도 어르신들이나 드라마/영화에서 영~ 답답~하다 싶으면 가슴을 두들기셨다. 허나, 요새 어르신들께서는 좀 갑갑~하다 싶으시면 한방병원이나 마사지받으러 가시는데.... 어쨌든, 울 어머니께서도 갱년기가 되었을 때 속에서 뭔가 모를 답답함이 느껴질 때마다 두들기셨다. 그렇게 두들기면 무슨 효과가 있냐고 물었을 때, 체한 듯한 기분이 조금은 내려간다고 말씀하셨다.
윤동주 시인도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답답한 마음을 해소해보려고 턱 막힌 먹먹한 가슴을 두들겨 보았을 것이다.
◆ '가아는 한숨보다 못하오.'에서 '가아'는 무엇일까?
(2연)
그래 봐도
후-
가아는 한숨보다 못하오.
가아가 무엇인지 의문이 많았다. 나는 방언 중 '갸'로 보고, '갸'를 가슴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면서 뭔가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아에 가슴을 대입했을 때, '가슴은 한숨보다 못하오'라는 문장이 만들어진다. 뭔가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사실 이렇게 해석해도 의미를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다.
더 자세하게 파헤쳐본다면 바로 '행위/행동'의 차이다. 1연에서는 '답답하면 주먹으로 가슴을 친다'는 행위로 나와있다. 그렇다면 한숨의 사전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근심이나 설움이 있을 때, 또는 긴장하였다가 안도할 때 길게 몰아서 내쉬는 숨이라고 되어있다(네이버 국어사전). 즉, 둘 다 똑같은 행위/행동의 단어로 만들어주려면 한 단어로 요약해서 표현해야 하는데 어렵다. 그것은, 그것, 그 등과 같은 지칭 대명사를 쓸 수도 있지만, 윤동주 시인은 '가아'를 골랐다. '그거' 말이야, 그거.
풀어서 해설하자면,
그래 봐도/후-/주먹으로 가슴을 치는 것은 한숨보다 못하오.
가 된다. 운율도 살릴 수 있고, 글자수도 맞출 수 있고, 일석이조가 된다.
◆ 자, 그러면 한숨을 쉬어보자.
답답하다고 가슴을 아무리 두들겨봐도 내 살이 아프지, 답답한 것은 해결되지 않는다.
답답할 때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는데 그게 바로 '한숨'이다. 후-하고 한숨을 내뱉는 것이다.
답답할 때 한 번 해보라.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후- 내뱉는 것을. 아, 하기 전에 사람들이 많은 곳이나 가족 곁에서 하는 것보다는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하는 것이 좋다. 한숨 소리 낸다고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하고 난 뒤 기분이 어떤가? 가슴을 치는 편이 나은가? 아니면 한숨을 내뱉은 것이 나은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나 또한 후자가 더 낫다.
내가 들고 있는 응어리들이 호흡을 통해 내뱉어지면서 살짝은 풀리는 기분이 묘하게 들기 때문이다.
1936년, 그 당시 윤동주는 숭실학교에서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자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5년제인 광명학원 중학부 5학년에 편입을 했다.
학교까지 자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윤동주 시인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윤동주 시인의 부모님도 본인도 다 답답했을 것이다. 가슴을 두들김으로써 답답함이 완전하게 해소되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호흡이 붙어있는 이상 '내'가 지금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문학에 대한 열정과 조국을 위한 시를 계속적으로 쓰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투쟁했던 것이 아닐까.
*편집 프로그램 : 미리캔버스
*폰트 사용 : 독립서체 윤동주 별헤는 밤
+2022.08.25 가독성을 위해 수정함. 내용 보완을 위해 수정함. '가아'에 대한 해석을 추가함.
+2023.11.13 가독성을 위해 폰트 크기 및 글꼴 변경, 내용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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