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
2018년, 윤동주의 서시 해설을 네이버 블로그에 게시한 적이 있다. 부끄럽지만, 그때는 필사하면서 느낀 짧은 감상글을 남겼는데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했다. 4년이나 흐른 지금, 윤동주 시인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한 번 더 해설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더클래식] 출판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이다. 아버지께서 개척교회를 열면서, 교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주문한 책들 중 하나였다. 그 당시에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시 필사할 것만 대충 찾아서 포스트잇을 붙여놓고만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5월이 되어서야, 나는 이 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윤동주 시를 필사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지만, 외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나는 단기 기억이 안 좋은 편인데, 이 문장들을 전부 외울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했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등급도 낮은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문학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으로 시작하여, 아르바이트 휴식 시간마다 틈틈이 외우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 끝에 그 당시에는 외우는 것을 성공했다. 하지만 그 '당시' 한정이었다. 지금의 나는 얼추 아, 이런 단어가 들어갔지, 이런 기억이 날 뿐, 다 외우질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전해야만 했다. 인생은 끝없이 배워야 하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알아가기 위해, 윤동주 시인, 인물부터 공부하기로 했다.
◆ 윤동주 시인 인물 소개 및 간단한 생애
윤동주 시인은 1917년 만주 북간도에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에서 개신교 장로이자 소학교 교사인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시에서 교회당,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등과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1931년 14세에 명동소학교를 졸업했고, 15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숭실중을 나와서,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연희전문학교 문과 진학을 희망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이에 반대가 심해서 싸움이 잦았으나, 할아버지가 중재함으로써 1938년 연희전문학교로 진학할 수 있게 된다. 연희전문학교는 민족주의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조선어를 가르치고 곳곳에 태극기가 있었다고 한다. 졸업 후에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 꺼지지가 않자, 유학을 결심했다. 1942년 일본 명문 도쿄 릿쿄대학 영문과를 다니다가 교토 도시샤대학 영문과 학생으로 편입했다. 이유는 당시 도쿄에 있는 대학들은 교련 수업을 받아야 했다고 한다. 윤동주는 이를 거부해서 고초를 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고종사촌 송몽규와 고희욱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고희욱은 독방에 수감되었지만, 담당검사가 제3고교 출신의 선배라서 기소유예로 6개월 만에 풀려났다. 남은 윤동주와 송몽규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년형을 선고받았다. 윤동주는 1년 7개월 동안 건강 악화로 1945년 2월 16일 향년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송몽규 또한 1945년 3월 7일 향년 27세에 세상을 떠났다.
윤동주 시인 인물 소개 및 간략한 생애 출처) 나무 위키_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지음 [더클래식] 인물 소개란
윤동주 시인이 세상에 다녀간 나이보다 이제는 내 나이가 더 많아졌다. 지금 내 동생의 나이에 요절한 윤동주 시인은 대한독립과 삶에 대한 고뇌가 얼마나 많았을까. 송몽규와 윤동주가 외치던 대한 독립일을 몇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을 때 얼마나 한탄스러웠을까.
◆ 자신의 소극적이었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구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사람이 무언가 부끄러운 행동/잘못된 행동을 처음 하고 나면, 당당하게 하늘 바라보기가 무섭다. 누군가가 나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있지 않을까, 내가 이러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하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반복될수록, 부끄러움과 죄스런 마음은 사라지고 스스럼없이 그 행동을 하게 되며 아무렇지 않게 된다.
윤동주 시인은 하늘을 바라보며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다. 그 누구보다도 그렇게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종교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한 끗 차이로 자신의 실수로 되돌아갈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몸을 사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과감한 면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하며 굉장히 소극적인 면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소극적인 성격과 행동과는 다르게 올바르고 굳은 길을 걸어갔다. 죽는 날까지도 이 나라와 후손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서 투쟁했다.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그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잎새는 나무의 잎사귀를 말한다. 나뭇잎을 가만 바라보면 내가 느끼지도 못하는 바람에도 살랑살랑 움직인다.
윤동주 시인은 자신이 얼마나 괴로워하는지를 '잎새에 이는 바람'으로 비유를 했다. 매 순간마다 느껴지는 그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아마 자신이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이게 행동함으로써 시간이 흘러갈 때마다 가슴은 타들어가는 느낌이었을 것이고, 피부는 겨울의 찬 칼바람을 맞듯이 아렸을 것이다.
◆ 사랑할 시간이 모자라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하늘이긴 하늘인데, 어두컴컴한 밤하늘은 밝은 것과 반대이기 때문에 부정적이다. 하지만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은 긍정적으로 나타낸다. 지구에서 별은 닿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별은 닿기 힘든 이상이나 목표가 되기도 한다.
윤동주 시인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라고 표현을 했는데, 윤동주 시인에게 '별'이란 무엇일까? 바로 독립이다. 그럼 왜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기원하기 때문이다. 노래는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같은 노래를 부를 때, 음, 박자, 가사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리 또한 커지기 때문에 더 웅장해진다.
독립을 바라고 원하고 기원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말했다. 여기서 모든 죽어 가는 것은 무엇일까? 독립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숨죽여 사는 마음과 실제로 희생자가 되어버린 사람들과 일본인들이 파괴한 자연들이다.
◆ 그는 또 '길'을 걷는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상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동주 시인은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말한다. 나한테 주어진 길이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더 깊게 이해를 하려면, 윤동주 시인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사명"이라는 것이 있다. 사명이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맡긴 일이다. 즉, 윤동주 시인은 그 일,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긴 사명을 해야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에게 사명이란 바로 대한독립이다.
◆ 현실은 바뀌지 않았지만, 오늘 또 밤이 지나간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는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유토피아만 바라는 사람은 아니었다. 현실을 망각해 버린 사람도 아니다. 그는 현실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오늘 밤에'도'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라는 구절이 생각나는가? 나뭇잎이 바람에 스쳐 그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괴롭다고 했는데, 지금은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했다. 대한독립이 바람에 스치우기 때문에 국가가 괴롭다는 것이다. 밤에"도"라고 했기 때문에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일본군에게 아직 국가를 되찾지는 못했다는 것을 안다.
이제 다시 서시의 첫 문장부터 읽으면 자신의 신념, 아픔과 고뇌, 위로와 추사, 앞으로의 다짐, 현실이다. 이 시의 비극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부분이 "무한 도돌이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윤동주 시 중에 <서시>를 가장 좋아한다. 짧으면서도 강렬한 그 무언가가 마음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죽는 날까지 도덕심/양심을 바르고 올바르게 잘 살아가는 것, 현실을 살아가면서 다양하게 겪는 감정의 고통과 고뇌, 살아온 지금까지의 모든 추억과 기억에 대한 기쁨과 애도,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굳은 결심 그리고 지금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자기가 꿈꾸는 미래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
배경은 다르지만, 자유를 가지고 있는 현대에도 각자마다 많은 고민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누군가를 잃은 상실감으로 삶의 의욕을 잃었었다. 이제 애도한 지도 벌써 9년째지만 별 다른 해결 방안이 없었다. 한해마다 감정을 추스르며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워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사는 것이 무슨 죄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내 현실이 무너질 정도로 그리워했기 때문에 문제였다.
이제 나 자신도 변할 때가 된 거 같다.
4년 만에 다시 서시를 해설하면서, 느낀 점은 하나다.
나 또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편집 프로그램 : 미리캔버스
- 사진 출처 : 한이(본인), 경주
- 글꼴 : 네이버나눔손글씨 느릿느릿체
- 모든 시 '해설' 부분은 저작권이 있으니 유의 바랍니다.
+2023.11.10 시 이해를 더 높이기 위해 내용 추가 및 부분 수정, 가독성을 위해 글씨 폰트 및 크기도 변경함.
+2024.05.01 어색한 문장 구조나 단어를 수정함.
'인생은 평생 공부다 > 윤동주 시 해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 - 윤동주 해설, 살아있음을 느끼는,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는 소리 (0) | 2022.07.30 |
---|---|
편지 - 윤동주 해설, 주인 잃은 편지는 어디로 보내야 하나요 (0) | 2022.07.27 |
가슴1 - 윤동주 해설, 어쩔 때는 한숨이 제일 낫다 (1) | 2022.07.24 |
못 자는 밤 - 윤동주 해설, 양 대신 세어보는 밤, 가장 짧은 시 (0) | 2022.07.22 |
투르게네프의 언덕 - 윤동주 해설, 나는 무슨 고개를 넘고 있는가 : 작품 <거지>와 비교해보기 (0) | 2022.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