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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윤동주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1942년 추정
윤동주 시인은 <봄>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두 편 썼다. 하나는 동시 <봄>, 하나는 1942년으로 추정되는 때에 쓴 <봄>. 이 두 시의 분위기는 극과 극에 달한다. 나는 후자에 관한 <봄> 해석을 할 예정이다.
◆ 몸도 봄을 알아차린다
(1연)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 가차운 : 가까운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흐른다고 했다. 봄이 정말 혈관 속에 흐를까? 아니다. 시적인 표현일 뿐이다. 추워서 수구리면서 굳어있던 몸들이 기지개를 활짝 켜는 느낌일 것이다. 몸도 봄이 오는 것을 안다. 노곤노곤 춘곤증이 몰려오기도 하니까.
시내 가까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란 배추꽃이 피었다고 한다. 저번에 다뤘던 시 <사랑스런 추억>에서도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것이라 하였는데, 아마 소식을 기다리기 위해 윤동주 시인은 기차역에 자주 갔었나 보다.
◆ 고난에도 쓰러지지 않음을
(2연)
삼동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윤동주 시인은 삼동을 참아왔다고 한다. 삼동은 크게 두 가지 뜻으로 나뉜다.
- 삼동 : 초동, 중동, 계동. 즉 음력 10월, 11월, 12월을 아울러 이르는 말
- 삼동 : 겨울의 방언(경남)
- 삼동 : 세 해의 겨울.
윤동주 시인은 3년을 참아온 것일까, 3개월을 참아온 것일까. 윤동주 시인은 1939년 9월~1940년 12월, 1년 2개월 동안 시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괴롭고 우울하면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꿈과 일도 자연스럽게 손에 놓이게 된다. 집중할 수도 없고, 뭔가 하더라도 제대로 된 결과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은 저 고비를 넘기고 시를 다시 잡았다.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윤동주 시인은 한 겨울에도 버틸 수 있던 풀에 자신을 비유한다.
◆ 땅에 매인 자신과 다르게 자유로워 보이는 종달새
(3연)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 즐거웁게 솟쳐라.
종달새 보고 즐거워 보인다고 한다. 그러고 이랑에서 즐겁게 위로 높게 올라가라고 한다.
- 이랑 : 1. 논이나 밭을 갈아 골을 타서 두두룩하게 흙을 쌓아 만든 곳. 물갈이에는 두 거웃이 한 두둑이고 마른갈이나 밭에서는 네 거웃이 한 두둑이다. 2. 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울러 이르는 말. 3. 물결처럼 줄줄이 오목하고 볼록하게 이루는 모양을 이르는 말. 또는 이런 모양에서 볼록한 줄을 오목한 줄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새들도 먹이를 먹으러 땅에 오지만, 잠깐 있다가 나무나 하늘로 날아간다. 가야 할 곳도 있겠지만, 천적을 피하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윤동주 시인은 종달새가 한편으로 부러웠을 수도 있다. 날개가 있으니 어디든 날아갈 수 있고, 먹을 것을 먹고 힘을 내어 또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자신은 먹을 것을 먹어도 힘이 나질 않는다. 왜냐하면 먹고사는 것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은 자신과 다르게 자유로워 보이는 종달새가 즐거워 보이고, 즐겁게 보였던 것이다.
성경 마태복음 6장 26절에서는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라고 되어있다. 성경을 묵상했던 윤동주 시인이라면 이 구절을 몰랐을 리가 없다. 아무 염려 없이 새들은 무언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인 너는 더 귀하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어떻게든 광복을 이루게 해 주실 역사를 믿지만, 하지만 언제? 주변 환경을 보면 사람은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지만, 한편으로 될까? 하는 마음 같이.
◆ 꿈과 이상은 또 부딪혀
(4연)
푸르른 하늘은
아른, 아른, 높기도 한데······
1연과 다르게, 희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4연에서는 아련하다. 하늘이 푸르르다고 했다. 윤동주 시인은 이상을 바라볼 때마다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런데 아른, 아른, 높기도 하다고 한다. 이 부분은 <십자가>와 비슷하다. 그 이상이 너무 높아서 자신이 닿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랑스런 추억>에서도 비둘기 얘기가 나온다. 자신은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과도 가까워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봄이 왔다 한들, 시인의 마음에 있는 눈은 녹지 않았을 것이다. 삼동을 지나갔지만 아직 조국에는 봄을 찾지 못했기에, 여전히 그 눈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 편집 프로그램 : 미리캔버스
- 글꼴/폰트 : THE메모왕
- 참고 서적 : <윤동주의 문장> [홍재]
- 사전 : 네이버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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