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평생 공부다/윤동주 시 해석

산골물 - 윤동주 해설, 괴로움은 어디로 보내야 할까

한이 HanE 2023. 4. 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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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물 윤동주 해설

산골물

                  윤동주

 

괴로운 사람아 괴로운 사람아

옷자락 물결 속에서도

가슴속 깊이 돌돌 샘물이 흘러

이 밤을 더불어 말할 이 없도다.

거리의 소음과 노래 부를 수 없도다.

 

그신 듯이 냇가에 앉았으니

사랑과 일을 거리에 맡기고

가만히 가만히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자.

1939.9

 


 가끔 해설이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단어 하나 때문에 글 쓰는 것을 멈추고 생각하다 돌아왔다. 한 2주 걸렸나...  '그신 듯이.' 윤동주 시인은 어떤 의미로 썼을까. 이 작품에서도 윤동주 시인의 종교가 살짝 드러난다.

 

◆ 얼마나 괴로운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1연

(1연)
괴로운 사람아 괴로운 사람아
옷자락 물결 속에서도
가슴속 깊이 돌돌 샘물이 흘러
이 밤을 더불어 말할 이 없도다.
거리의 소음과 노래 부를 수 없도다.

 윤동주 시인은 "괴로운 사람아"을 부른다. 하지만 1연 중간 부분을 살펴보면 '더불어 말할 이 없도다'라고 되어있다. 어떠한 문제점에 대해 혹은 어떤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함께 대화 나눌 이가 없으니 괴로운 사람은 즉 윤동주 본인인 셈이다. 정확하게는 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지만.


 옷자락 물결 속에서도 가슴속 깊이 돌돌 샘물이 흐른다고 표현했다.

 

 보통 씻는다고 하면 옷을 벗고 들어가거나 물장난을 친다 하더라도 아랫도리는 입고 들어갔을 텐데, 윤동주 시인은 옷자락이 물결 속에 있다고 했다. 옷자락은 옷의 아래로 드리운 부분을 말하는데, 옷자락은 끝 부분이니 물가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젖은 것은 옷자락뿐만 아니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도 샘물이 흘러나온다고 했다. 즉,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슬프다는 것이다. 아마 마음에서 슬픔이 흘러넘쳐서 옷자락까지 적실 정도라는 표현이 아닐까. 하지만 이 슬픔을 말할 사람도 없는데, 더군다나 밤이다. 사람이 가장 고독하고 쓸쓸해지고 외로워지는 밤. 거기다 고통까지 더하는 밤이니 뭘 더 말할 수 있을까.

 

 거리의 소음도 거리의 노래도 부를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은 1930년 중반 이후부터 학교 수업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한글을 없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말조심, 입조심을 했던 거 같다.

 

 우리 외할머니께서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나셨는데, 이모들이 하시는 말씀이, "어머니랑 아버지께서 일본어로 엄청 유창하게 대화하셨다"라고 하셨다. 일본이 얼마나 탄압을 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심적으로 너무 괴로우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솜에 젖은 듯한 무게가 느껴진다. 윤동주 시인은 현재 상황을 보고, 마음이 굉장히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잘못 누설했다가 자기 가족들까지 피해를 받을 수 있으니 그저 입을 꾹 다문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그신 듯이'는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2연 1구절)
그신 듯이 냇가에 앉았으니

 

 문제의 '그신 듯이'.... 총 7개 경우의 수...가 아니라 뜻을 가져와봤다.

 

  1. (옛말) 숨기다, 기이다.
  2. (함경 방언) 속이다
  3. (충남 방언) 긋다
  4. 그리다 (내 생각)
  5. 가다 (동생 생각) 
  6. 괴로운 듯이 (동생 생각)
  7. 귀신 같이 (내 생각)

 수학 공식처럼 하나씩 대입하면서 해설해 보았다. 그 중 가장 의미가 된다 생각하는 것은 1, 2, 6, 7번이었다.

 

 1번 : (옛말) 숨기다, 기이다

(몸을) 숨기듯이 냇가에 앉았으니

 몸을 숨기듯이 라는 의미다. 뒤에 사랑과 일을 거리에 맡기자는 말이 나왔기 때문에, 도망간 것이다.

 

 2번 : (함경 방언) 속이다

(누군가를) 속이듯이 냇가에 앉았으니

 아무래도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지역을 고려하면, 이 단어가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 단어가 자연스럽게 시에 녹아내릴까 고민을 해봐도 답이 잘 나오질 않았다.

 

 누군가를 속여서 모든 상황을 제껴두고(=제쳐두고) 도주하는 의미로 바뀌어 버린다. 현대로 치면, 학교에 아프다는 핑계로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서 제출하는 거랄까.

 

6번 : 괴로운 듯이 (동생 생각)

괴로운 듯이 냇가에 앉았으니

 이건 동생이 생각해냈다. 1연에서 '괴로운 사람아 괴로운 사람아'가 나왔는데, 2연에서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반복적인 단어를 피하고 싶어서 단어를 변형해서 사용한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이다.

 

 이렇게 줄이고 변형을 시켜서 단어를 쓴 이유 중 다른 이유는 발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7번 : 귀신 같이 (내 생각)

귀신 같이 냇가에 앉았으니

 윤동주 시인은 기독교인이다. 그렇다면 성경 묵상도 자주 하는 편일 텐데, 나 또한 글을 쓰다 보면 성경에서 쓰이는 말투가 나올 때가 있다. 성경에서 귀신 들린 사람들이 나오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귀신이 들린 상태면, 일이든 사랑이든 정신이 온전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도피 및 회피하게 되어있다.

 

 다른 이유로는 경상도 지역 사투리가 '의사' 발음도 '으사'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어서 '귀신'을 '구신'이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에서 '귀신 같이'가 아닐까라는 것이 내 추측이다.

 

 어두운 곳에 멍하니 넋이 나간 상태로 있으면, "왜 이리 귀신 같이 있냐"라는 말이 있듯이, 1연에서 '이 밤'을 더불어 말할 이가 없다고 되어있다. 귀신 같다고 말을 바로 해버리면, 너무 부정적이게 들리기 때문에 단어를 조금 변형한 것이 아닐까.

 

 '귀신 같이', '귀신처럼'과 같은 단어가 들어가게 되면, 'ㅊ' 'ㅍ' 'ㅋ' 과 같은 파열음 때문에 발음이 매우 강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조금 더 부드러운 표현을 찾았던 것이 아닐까.

 

 

◆ 결국에는 해결할 수 없으니, 모든 것을 버리고 도피.

(2연)
그신 듯이 냇가에 앉았으니
사랑과 일을 거리에 맡기고
가만히 가만히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자.

 앞에 그신 듯이를 참고하고 다음 단락들을 보면, 도피다.

 

 여기서 거리는 현실이고, 바다는 이상이다. 윤동주 시인의 성격상 이상을 향해 짐을 짊어지고 가겠지만, 사랑과 일, 이 시에서는 다 버리고 간다. 중요한 이 두 개를 거리에 맡기고 가만히 바다로 가자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선, 산골물은 좁고 작다. 그러니 넓은 바다로 가자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내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던 이유와 같을 거 같다. 그 넓은 바다라면, 자신의 모든 생각과 감정들을 담아둘 수 있을 테니까. 바다는 너무나도 넓고 크니까 한없이 품어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가만히, 가만히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자를 두 번이나 반복했을 수도.


 이 시를 해설하다가 내가 괴로운 사람이 되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2연에 1구절 '그신 듯이'가 해설이 '귀신 같이'라고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과한 해설이 아닐까, 라는 고민도 많이 했지만 성경도 자주 묵상했던 윤동주 시인의 성격이라면... 영향이 없지 않아 있다고 본다. 해설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완전한 해석이 아니기 때문에 참고하길 바란다.

 


- 편집 프로그램 : 미리 캔버스

- 글꼴/폰트 : 엠케이(MK)체

- 사전 : 네이버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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