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이 불어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1941.6
오랜만에 윤동주 시인의 시 해설로 돌아왔다.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덤덤하게 자신의 상황을 나열하고 있는 거 같아 그 서글픔이 느껴졌다.
◆ 바람은 어디에서 어디로?
(1연)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이과가 아니라 문과라서 바람이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지는 모르지만, 문과적인 해석은 가능하다.
윤동주 시인의 시에는 특징이 있는데, 자주 사용되는 '단어'들이 있다. 그중, 윤동주 시인의 대표적인 시, <서시>에서도 '바람'이 나온다.
- ···(중략)···/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중략)··· <서시> 중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표현했다. 잎새가 움직일 정도면 바람의 세기가 어느 정도여야 할까. 살랑 부는 봄바람에도 움직이는 잎새다. 작은 일이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크게 와닿아 괴롭다는 것이다. 가끔, 아주 가끔씩은 작은 일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이 바라봤던 시대적인 상황이 그랬지 않았을까.
시기상 <바람이 불어>는 1941년 6월에, <서시>는 1941년 11월에 쓰였다. 윤동주 시인도 처음에는 '괜찮아, 금방 지나갈 테야'라고 생각하다가 '끝이 없구나'라는 절망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라는 구절에서 이 상황이 끝날 거 같지 않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해낸 것이다.
◆ 바람이 불지만, 거기에는 이유가 없다.
(2,3연)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바람이 부는데 본인은 괴롭지 않다고 표현한다. 이 시를 지을 때만 해도 윤동주 시인은 그렇다고 느꼈다고 본다. 왜냐하면 <서시>에서는 명백하게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시에서는 윤동주 시인은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고 윤동주 시인은 자신에 대한, 자신의 괴로움에 대한 고찰로 이어나간다.
◆ 사랑한 일도,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그러면 무엇이 그를 괴롭게 하는가?
(4연)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이 시에서 가장 나를 구슬프게 만들었던 연은 바로 4연이었다.
-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보통 시인들이 즐겨 쓰는 소재로는 '사랑'이다. 누군가를 가슴 깊게 사랑해서 쓰는 시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은 이에 대해서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라고 못 박아둔다. 그랬기에 윤동주 시인의 <편지>에서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세상을 먼저 떠난 친누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사랑해서 괴로운 것이 아니면 무엇 때문에 괴로운 것이었을까. 윤동주 시인은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고 표현했다. 과연 시대를 슬퍼한 적이 없었을까? 하지만, 슬픈 것도 슬픈 거지만, <서시>에서 봤듯이 '괴롭다'고는 표현했다.
◆ 왜 반석 위에 섰다고 표현했을까?
(5연)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5연과 6연은 같은 맥락으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바람 = 강물
- 반석 = 언덕
기독교에서 '반석'이라는 단어가 자주 쓰인다. 반석은 무슨 뜻일까?
- 반석 : 1. 넓고 평평한 큰 돌. 2. 아주 견고하고 든든한 것의 비유.
원래라면, 반석은 좋은 의미로 쓰이는 편이다. 긍정적이다. 무언가를 의지하거나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에서는 아니다. 윤동주 시인은 반석을 기독교적인 의미보다는 한자를 그대로 풀어낸 해석이다.
자신의 발이 반석 위에 서있다고 하며, 바람이 자꾸 분다고 한다.
바람은 느낄 수가 있다. 바람이 흐른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바람은 시간이다. 바람은 시대다. 바람은 현실이다. 바람은 윤동주 시인에게 있어서 '괴로움'이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은 그 바람을 막을 생각보다는 그대로 반석 위에서 맞고 있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자신 또한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반항하지도 않은 채, 그저 맞고 있을 뿐이다.
◆ 왜 언덕 위에 섰다고 표현했을까?
(6연)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윤동주 시인은 5연과 비슷하게, 강물과 언덕으로 단어를 바꿔서 표현했다.
두 번이나 언급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은 괴롭고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지만, 잠잠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는 자신을 답답하게 여겼을 수도 있다. 요새 돌아다니는 문구 중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죽고 싶기보다는 이렇게 살기 싫었던 거지."
윤동주 시인 또한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죽고 싶지 않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는, 너무나도 괴롭고 힘들지만 자신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서 답답한 마음을 꾹 누르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바람이 불어>에서는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윤동주 시인은 그저 시대적인 분위기만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서시>에서는 완강한 태도로 조금은 소극적이지만, 자신이 어떠한 길을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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