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의 인상화
윤동주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에 멈추어
살그머니 애띤 손을 잡으면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1938.9
시가 아무래도 1930년대에 지어지다 보니, 현재 단어나 조사 등이 바뀌어서 출판사마다 조금씩 번역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더클래식 출판사는 최대한 원문에 실린 그대로를 쓰려고 했다.
반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자화상 출판사에서 낸 <아우의 인상화>는 아래와 같이 번역되어있다.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도록 현대 번역이 되어있다는 점만 참고하면 될 거 같다. 네이버 블로그에도 해설을 한 번 한 적이 있지만, 이 작품은 설명하기가 여전히 어렵다.
◆ 아우의 인상화, 아우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앞에 다른 게시글을 보면 알다시피, 윤동주에게는 형제가 많다. 세상을 일찍 요절한 첫째, 둘째 누나, 여섯째 남동생. 그리고 넷째 윤혜원 1924년생, 다섯째 윤일주 1927년생, 일곱째 윤광주 1933년생. 윤광주는 만 5살밖에 되지 않았기에 저렇게 능숙하게 대답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후보로 윤혜원과 윤일주가 남았다. 윤혜원은 만 14세, 윤일주는 만 11세였다.
윤동주 시인은 그 당시에 만 21세였다. 동생들과 각각 7살, 10살, 16살 차이가 나는 셈이다. 여동생은 그래도 현재로 치면 중학생이니 무얼 하고 싶다는 다짐이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11살인 남동생은 아직 무언가가 하고 싶다거나 무언가가 되고 싶은 그런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추측하는 바, 다섯째인 윤일주와 대화한 것이 아닐까 싶다.
◆ 싸늘하다, 붉다/달과 이마 -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1연)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4연)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첫 시작과 마무리에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붉은 이마와 싸늘한 달이다. 그러고는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라며 소개해주고 있다. 그리고 한 번은 '서리어' 있고, 한번은 '젖어' 있다고 표현했다.
- 붉은 이마
붉은색은 보통 매우 강렬한 느낌을 나타낸다. '붉다'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피'다. 신체에 안 중요한 부위는 없겠지만, 피 또한 신체에 중요한 일부다. 피는 몸 여기저기를 타고 도는데, 특히 머리에는 중요한 혈관이 많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로 돌아가거나 말을 못 하거나 기억을 못 하거나 움직임에 제한이 생겨버린다. 이러한 현상은 부상을 당하거나 병이 생겨서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정신적인 충격으로도 종종 그러한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어리면 어릴수록 얼굴에 붉은 끼가 있다. 곧, 나이가 어린 동생의 얼굴이자, 정신이다.
조금 더 쉽게 예를 든다면, 우리나라 속담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피는 '가죽 피'다. 즉, 머리 가죽이 안 말랐다는 것인데, 사람 머리가 언제 젖어있을까? 씻을 때? 비 맞았을 때? 아니다. 자궁에서 갓 나온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의 의미는 '아직 애새끼'라는 의미에 가깝다.
즉, 윤동주가 말하고자 하는 붉은 이마는 요약하자면, 피, 생명력, 굳건한 의지, 정신력이다.
- 싸늘한 달
반면 싸늘한 달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선 붉다와 싸늘하다는 서로 대조된다. 붉다는 것은 뜨거움을 나타내는 단어지만, 싸늘하다는 차갑다에 가깝다. 싸늘한 분위기, 싸늘한 몸, 싸늘한 새벽 공기, 싸늘한 눈빛 등과 같은 예문이 있다.
달도 낮에 떠있지만, 어두운 밤에 잘 보인다. 달과 반대되는 태양은 강렬한 생명력과 의지를 나타낼 때 쓰이지만, 달은 고요함과 죽음 그리고 병듦 나타낼 때 주로 쓰인다. 즉, 싸늘한 달은 '죽어있다'와 같은 의미다.
밤은 어떤 이에게 다가오는 내일이 기대되는 설렘과 평화지만, 어떤 이에게는 천천히 다가오는 고통이다.
- 서리다 / 젖다
우선, '서리다'라는 단어를 사전적인 의미에서 본다면(네이버 국어사전),
- 수증기가 찬 기운을 받아 물방울을 지어 엉기다.
- 어떤 기운이 어리어 나타나다.
- 어떤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아 간직되다.
- 선 따위가 얼기설기 엉기다.
- 냄새 따위가 흠뻑 풍기다.
문자적으로는 1번이 맞다. 완전히 젖지 않고, 촉촉한 상태라고 해야 할까. 겉만 살짝 촉촉한 느낌이다.
윤동주 시인도 처음에는 이 상황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1연에는 '서리어'라고 표현하며,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라 소개했다. 하지만 4연에서는 이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깨닫고 다시 아우의 얼굴을 표현했을 때는 '젖어'라고 했다.
◆ '사람이 되지'는 무슨 뜻일까.
(2연)
발걸음에 멈추어
살그머니 애띤 손을 잡으면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
초·중·고를 나오면, 꼭 하게 되는 것이 있다면 '장래희망'을 적는 것이다. 1년 뒤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10년 뒤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20년 뒤, 30년 뒤... 윤동주 시인도 동생에게 "너는 뭐가 되고 싶어?"라고 그냥 물어봤을 수 있다. 하지만 동생의 대답은 "사람이 되지"라고 했다. 어쩌면 간단하게 생각하면 동생이 장난을 치는 듯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깊게 들어가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 사람 (네이버 국어사전)
-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 어떤 지역이나 시기에 태어나거나 살고 있거나 살았던 자.
- 일정한 자격이나 품격 등을 갖춘 이.
- 인격에서 드러나는 됨됨이나 성질.
- 상대편에게 자기 자신을 엄연한 인격체로서 가리키는 말.
- 친근한 상대편을 가리키거나 부를 때 사용하는 말.
- 자기 외의 남을 막연하게 이르는 말.
- 뛰어난 인재나 인물.
- 어떤 일을 시키거나 심부름을 할 일꾼이나 인원.
-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세는 단위. 주로 고유어 수와 함께 쓴다.
- (법률) 권리와 의무의 주체인 인격자. 자연인과 법인을 포함한다.
아마 윤동주 시인은 동생이 8번과 같은 의미로, 선생이 되든 뭘 배워서 크길 바랐겠지만, 동생은 그러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오늘 혹은 내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본군의 난폭함과 잔인함을 보며 그들이 사람이 아닌 괴물로 보였을 것이고, 또 일본과 내통하는 친일파를 보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한 모습들을 보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 이런 생각이 자리에 잡혔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눈치를 못 챘을 리가 없다. 윤동주는 아우의 대답을 듣고, 마음이 철렁 가라앉았을 것이다. 성인인 본인도 힘든데, 아우라고는 그렇지 않았을까. 아우의 대답을 진정 설운 대답이라고 했다. 거짓 없이 참으로 원통하고 슬픈 대답이다.
◆ 그 당시에 꿈을 꿀 수 있었을까.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를 다시 들여다본다.
윤동주 시인은 아우의 손을 잡았다가 놓고 다시 아우를 바라보았다. 현실 상황이 그렇다 하더라도, 아우는 그래도 동심을 잔뜩 가진 채,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가길 바라지 않았을까. 상황을 대충 알고만 있으리라 생각했던 동생이 다 알고 있던 터라, '서리어' 있던 모습이 대화하고 나니 '젖어' 있다. 윤동주 시인은 가슴이 먹먹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윤동주 시인은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서라도 작은 움직임이지만, 시를 쓰면서 소소하고 작은 투쟁을 통해서라도 독립운동을 하려고 애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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