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윤동주
빨래줄에 두 다리를 드리우고
흰 빨래들이 귓속 이야기하는 오후,
쨍쨍한 칠월 햇발은 고요히도
아담한 빨래에만 달린다.
1936
▶ 의인화로 사물이 사람처럼 행동하게 만들기
이 시도 윤동주가 쓴 <눈>과 비슷하다. 사물에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애니메이션 특히, 디즈니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동물도 사물도 인간의 형태로 표현이 되거나 성격과 특성을 지니고 있다. 큰 하마가 발레를 하거나, 도날드덕이나 미키마우스가 주변 사물과 다툼을 벌이거나 이미 본인들이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처럼 나와서 다른 동물이나 곤충을 다루는 모습이 나온다. 이렇게 표현하는 방법을 의인화라고 한다.
의인화로 예시를 만들자면 이렇다.
- 파도는 모래를 이리저리 흔들며 못 살게 굴었다.
- 병 세우기를 어렵게 성공한 나를 고양이는 옆에서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 한 겨울에 내리는 비는 심술꾸러기. 인정사정없는 겨울 비는 땅을 아주 스케이트장으로 만들 생각일까. 바닥이 꽁꽁 얼었다.
내가 만든 예시라서 부족함이 있을 수도 있지만, 물건이든 동물이든 뭐든, '사람'인 것처럼 생명을 불어넣어 주듯이 행동하게 만들어주면 된다.
그렇다면 윤동주 시에는 어디에 의인화가 적용되었을까?
빨래줄에 두 다리를 드리우고
빨래줄에 두 다리가 있는 것은 바지라는 의미다. 드리우고는 '빨랫줄에 걸린 바지는 한쪽이 위에 고정되어 아래로 늘어지게 있는 것'이다. 바지통을 디자인 계열에서 다리라 표현하는지 모르겠지만, 만일 윤동주 시인이 바지 다리 부분을 사람의 두 다리라고 표현했다면 의인화가 된 부분이다. 마치 빨랫줄에 바지가 두 다리를 늘어지게 있는 모습을 말한다.
흰 빨래들이 귓속 이야기하는 오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옛날부터 흰옷을 입었기에 백의민족이라 불렸다. 그래서 빨래들이 흰색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빨래들이 귓속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 시대 때는 건조기도 당연히 없었고, 실내에서 빨래를 널기보다는 날씨 좋은 날에 빨래를 하고 야외에 널었다. 야외에 빨래를 널면 바람이 부는데, 그 바람에 의해 빨래들이 펄럭거리는 소리를 귓속 이야기한다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쨍쨍한 칠월 햇발은 고요히도
아담한 빨래에만 달린다.
햇발은 사방으로 뻗친 햇살을 의미한다(출처:네이버 국어사전). 햇살은 소리가 없다. '고요히'라고 붙였는데, 햇살은 이미 조용하고 잠잠하다. 햇살이 어떻게 고요히 하겠는가? 의인법이다.
빨래에도 아담하다고 붙였다. 아담하다는 뜻은 적당히 자그마치하다라는 의미이다. 요새 사람들은 아기들의 작은 옷들을 보며 "귀여워"라고 한다. 윤동주 시인도 빨랫줄에 걸린 동생들의 옷을 보고 자그마하다라고 느끼며 '아담한' 빨래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 시를 있는 그대로 풀어서 해설하기
빨랫줄에 바지도 널었다.
흰 빨래들이 작은 바람에도 펄럭이는 오후다.
쨍쨍한 칠월 햇살은 동생들의 작은 빨래에 향하고 있다.
윤동주 시인에게는 동생이 무려 4명이나 있었다. 여동생 1명과 남동생 3명. 하지만 그중 여섯째 남동생은 세상을 일찍 요절하였다. 여동생 윤혜원(1924), 남동생 윤일주(1927), 남동생 윤광주(1933) 각각 13살, 10살, 4살이었다. 아담한 빨래를 언급한 이유는 윤동주 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936년 7월 어느 날, 하얀 빨래들이 빨랫줄에 걸려 바람에 잔잔하게 날리는 것을 보고 쓴 시였을 것이다.
▶ 왜 아담한 빨래에만 사방으로 뻗친 햇살이 달린다고 했을까?
세탁기가 없던 그 시절에는 강가, 냇가, 우물가, 도랑에서 했고, 빨랫감을 그곳까지 들고 가야 했다. 그래서 가사노동 중 가장 힘든 것이 '빨래'였다고 한다. 빨래 방법이라도 쉬웠으면 좋겠지만 빨래 방법은 더 어렵다. 나무로 만든 빨랫방망이 혹은 빨래터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빨랫돌로 옷감을 두들겨 때를 뺐다. 세제로는 잿물, 오줌, 쌀뜨물 등을 사용했다(출처:한국민속대백과사전-세탁).
그중 4살배기인 막내 동생의 옷을 가장 자주 빨아야 했을 것이다. 자주 실례를 하고, 자주 옷을 더럽혔을 것이다. 특히나 흰 옷이라서 티가 잘 났을 것이다. 아무래도 아기의 옷이다 보니, 위생적인 면에서 가장 신경 써줘야 했을 것이다. 똥과 오줌이 묻은 옷은 햇살에 자국이 어느 정도 지워지기 때문에, 막내 동생의 옷을 햇살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널었을 것이다. 그늘 한점 가리는 곳 없는 빨랫줄에 너는 것이다. 그래서 사방으로 햇살이 내리쬐어, 자기 옷에도 부모님 옷에도 닿지만, 특히, 햇살 좋은 곳에 널은 동생들의 옷이 가장 잘 닿는다는 것이다.
▶ 윤동주 시인은 정말로 일상 속 이야기만 담아둔 시일까?
만일 일상 속 생활하는 모습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 무엇을 담고 있을까?
그나마 유력한 것으로는 '아담한 빨래에만 쨍쨍한 칠월 햇발이 달린다'에 나왔듯이, 동생들이 앞으로 조국의 미래에서는 광복된 세상에 살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는... 과하게 해설한 것이 아닐까, 조금 억지스럽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시를 해설하면서 할머니댁이 생각났다. 친할머니댁은 주변에 주택이 따닥따닥 붙어있어서 마당이 없고 지붕에서 빨래를 널거나 날씨가 안 좋으면 실내에 빨래 건조대에 말렸다. 외할머니 댁에는 불과 15년 전만 해도 마당에 빨랫줄이 있었다. 그리고 집에도 방 대각선으로 긴 빨랫줄이 걸려 있었다. 아마 형제자매 다 포함해서 8명이나 되어서 그런지 빨랫줄이 많다. 이제는 빨래건조대가 있어서 실내에서 쉽게 빨래를 널 수 있다 보니 마당에 있는 빨랫줄과 방에 있는 빨랫줄을 치우셨다. 할머니 연세가 올해로 96세라서 빨랫줄에 빨래 너는 일도 벅차지고, 높기도 높고, 바람 불면 장대가 무너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어서다.
어렸을 때 빨랫줄에 옷이 널렸는데도 불구하고, 빨래 장대로 장난치다가 혼이 난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장대를 쏙 빼면, 빨랫줄이 물에 젖은 옷들 때문에 무거워 빨랫줄이 쭈욱 늘어나는데, 이때 빨래들이 바닥에 닿는 것도 있고, 닿을까 말까 한 것들도 있었지만, 바닥에 닿은 빨래들을 보시고 이모들로부터 혼이 났다.
윤동주 시인들도 짧은 인생이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보내었던 시간들, 쑥쑥 자라고 있는 동생들을 보며 이런저런 추억들과 기억들이 감옥에서 그리워하며 많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 편집 프로그램 : 미리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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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글꼴, 글씨 크기 변경 및 내용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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