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전당
윤동주
순아 너는 내 전에 들어왔든 것이냐?
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든 것이냐?
우리들의 전당은
고풍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 눈을 내려 감어라.
난 사자처럼 엉크린 머리를 고르련다.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성스런 촛대에 열熱한 불이 꺼지기 전
순아 너는 앞문으로 내 달려라.
어둠과 바람이 우리 창에 부닥치기 전
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 채
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
이제 네게는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험준한 산맥이 있다.
1938.6
윤동주 시인에게도 4년간 짝사랑했던 상대가 있었다. 아는 거라곤 그 사람의 이름과 얼굴뿐이지만, 짝사랑이라는 것은 참으로 어쩔 수가 없나 보다.
특히나 이 시에서는 윤동주 시인이 성경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군데군데 알 수 있다.
◆ 내 마음과 네 마음에 서로 들어간다는 것
(1연)
순아 너는 내 전에 들어왔든 것이냐?
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든 것이냐?
윤동주 시인이 홀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언제 내 마음에 들어왔어?" 그리고 자신의 마음도 빼앗겨 "내가 언제부터 너를 짝사랑하게 되었지?"
사랑의 전당에 '전'이라는 단어를 빼서 들고 오면, 殿 전각 전이다. 여기서는 궁궐이나 큰 집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데, 노래 가사에서나 시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궁궐로 오라"라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솔로몬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쓴 <아가>서가 떠오를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모든 예쁜 말들과 모든 축복의 말을 해준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성(집)으로 가자며, 데려가려고 한다. (아가 3장 1~4절)
◆ 풋풋한 사랑은 세련되지 못하다
(2연)
우리들의 전당은
고풍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
부모님 시대에는 남녀 나뉘어서 수업을 듣고, 교회에서도 따로 칸을 나누어서 예배를 들었다는 거로 아는데, 윤동주 시인 때도 그랬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기에 윤동주 시인은 우리들의 전당은 고풍한 풍습이 서려있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같은 공간에만 있어도 급 수줍음도 많아지고,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여나 말실수할까 봐 가슴 떨리는데, 남녀가 지금처럼 흔하게 만나고 데이트를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다가가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자기가 생각해도 고풍한 풍습이 정말 예스럽기만 하다.
◆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다 작아진다
(3연)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 눈을 내려 감어라.
난 사자처럼 엉크린 머리를 고르련다.
짝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잘 보이고 싶다. 하지만, 자신의 눈에는 짝사랑하는 사람이 무얼 해도 예뻐 보이기 때문에 자신은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봐 초라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초조한 마음을 윤동주 시인은 짧은 문장 안에 표현했다.
◆ '짝사랑'을 제대로 표현한 한 문장
(4연)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그러고 난 뒤에 윤동주 시인은 우리들의 사랑은 벙어리라고 표현한다.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같은 학교였다면, 마주치기 일쑤였을 텐데, 서로 눈만 살짝 마주치고 제대로 대화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 내 추측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의 사랑은 기껏해야 대단한 것 없이 다만 대화도 제대로 못해본 사이인 벙어리라고 한다.
◆ 사랑하는 사람의 예쁜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
(5연)
성스런 촛대에 열熱한 불이 꺼지기 전
순아 너는 앞문으로 내 달려라.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한 촛대에 따뜻한 불이 꺼지기 전, 이건 무슨 의미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과 자신이 사랑하는 마음이 식기 전이라는 의미다.
그렇기에 자신의 잘못된 욕망으로 어색한 사이보다는, 그 사람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주겠다는 의미다.
◆ 사랑하게 되면 어떤 시련이 올 줄 알기에 한 발 물러나는 마음
(6연)
어둠과 바람이 우리 창에 부닥치기 전
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 채
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
섣불리 잘못된 고백(요새 말로는 고백공격)을 하게 되면, 이 모든 사이가 틀어질 수 있으니, 자신만 사랑했던 감정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과는 다른 방향(뒷문)으로 사라지겠다는 의미다. 즉, 어떠한 고백도 하지 않고, 소극적인 자세로 취하겠다는 것이다.
◆ 짝사랑에게는 평화가, 나에게는 들끓는 마음만이
(7연)
이제 네게는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험준한 산맥이 있다.
마지막으로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을 한다.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네게 있다고. 숲 속에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호수가 네게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고 자신에게는 지세가 험하며 높고 가파른 산맥이 있다고 한다.
짝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마음을 알 리가 있을까. 아무런 표현도 하질 않았는데. 그렇기에 짝사랑은 자신을 보아도 아무렇지가 않기에 평화롭다. 그렇지만, 자신은 짝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애간장이 녹는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탓해볼 법 하지만,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이 예뻐 보일 뿐이니까.
짝사랑을 길게 한 사람이라면 그 마음이 얼마나 애타는지 알 것이다. 이 시에서도 윤동주 시인이 얼마나 순이를 그리워하고 짝사랑하면서, 자신의 기분이 높아졌다가 우울해졌다가, 초라해지는지에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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