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화삼(玩花衫) - 목월에게
조지훈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박목월 시인이 조지훈 시인에게 받은 <완화삼>을 답가로 보낸 <나그네>부터 해설하려다가 조지훈 시인의 <완화삼>을 먼저 해설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윤동주 시가 아닌 조지훈 시!
조지훈 시인은 1942년에 박목월 시인과 경주 건천역(현재는 폐역)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나중에 박목월이 1946년에 시집 <산도화>를 발간할 때, 조지훈 시인은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조지훈은 보름 동안 경주에 머물면서 <완화삼>을 박목월에게 써서 보냈고, 박목월 또한 이에 대한 답으로 <나그네>를 전했다고 한다. (출처)
◆ 들어가기 앞서, 제목부터 해설해야 할 판. '완화삼'이 무슨 뜻일까?
제목에서 완화삼이라는 어려운 한자가 나타나서 적잖게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다.
시를 자세히 보면, 조지훈 시인은 친절하게 정답을 알려주고 있다.
3연)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한자로 풀이할 경우,
- 玩 : 완 : 1. 희롱하다 2. 장난하다 3. 놀다, 놀이하다 4. 사랑하다 5. (되풀이하여) 익히다 6. 업신여기다 7. 깔보다, 얕보다, 경시하다 8. 감상하다 9. 구경하다 10. 장난감
- 花 : 화 : 꽃
- 衫 : 삼 : 1. 윗도리에 입는 홑옷 2. 의복의 통칭
즉, 나그네 긴 소매에 꽃잎에 젖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완'은 무엇을 뜻하는지 3연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희롱하다'라는 단어를 더 알아볼 필요성이 있다.
- 희롱하다 : 1. 말이나 행동으로 실없이 놀리다. 2. 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가지고 놀다 3. (예스러운 표현으로) 악기 따위를 능숙하게 다루다 4. 서로 즐기며 놀리거나 놀다
이 '희롱하다'는 의미로 쓴 것이 맞을까?
조금 더 단어를 분석해봐야 알 수 있을 거 같다.
꽃잎에 '젖어'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는데, 젖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물든다라는 것으로 해설할 수 있다.
물든다는 것은, 봉숭아로 손 끝을 옮아서 묻어나듯이, 연인 사이에서 '서로에게 물든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때 물든다는 것은 서로 사랑하며 서로의 생각이나 마음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그네'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 조지훈은 '나그네'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 나그네 : 1.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을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 2. 낯선 남자 어른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조지훈이 <완화삼>을 쓰게 된 배경이 박목월의 초대를 받아 경주에 찾아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조지훈도 경주에 갔을 때, '나그네'였을 것이다. 그리고 경주의 풍경을 보면서 감탄했을 것이다.
나도 이번 당일치기 여행으로 경주에 다녀왔는데, 교촌 마을 옆에 있는 월정교와 그 밑에 있는 돌다리도 건너보았다. 지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경주에는 강이 여러 군데 있어서 강변이 많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물이 흐르는 곳 근처에 마을이 있었기에, 물에 비친 하늘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산과 봉도 둘러싸였기에 산에 바위 또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경주는 제일 높은 산이 단석산으로 827m밖에 되질 않는다. 지리산 높이가 1696m가 되기에 하늘과 가까운 곳은 아마 에베레스트산(8849m) 아닐까 싶다. 과학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높이로나 심리적으로나 하늘이 멀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시 분위기는 풍류를 즐기는 나그네로 보이고 있다. 즉, 나그네는 본인 조지훈을 투영하며, 여행객이 된 자신이 자연을 사랑하고 즐기며 감상하고 구경하며 시를 지으며 놀았던 것이다. 하나로 정의를 내릴 수 있기보다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단어들로 표현이 된다고 보면 된다.
◆ 700리요...? 잠시만요. 제가 계산에 약해서요.
2연)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조지훈 시에 물길은 칠 백리라고 표현했다. 700리는 약 274km다. 부산시에서 서울시까지의 거리가 325km이니, 낙동강이 시작된 지점에서 경주까지의 거리를 찾아야 한다.
태백산에서부터 경주까지로 치니, 대략 226km가 걸린다고 뜬다. 이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 기준이다. 하지만 낙동강이 경주에서 끝날 리가 없다. 부산까지 내려오므로, 다시 검색을 제대로 하면
이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낙동강을 700리 물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조지훈 시인은 우리나라에서 큰 강, 낙동강을 700리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물길이 구름 따라 700리를 간다 했으니 끝과 끝 지점을 다니는 셈(남한으로 보았을 때)이다. 구름이야 말로, 정처 없는 진정한 나그네의 삶이다.
◆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차운산 이건 또 뭘까?
1연)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차운산을 붙여 써서 헷갈릴만하다. 차운 산은 차갑다-차웁다, 차갑다, 찹다,차다-와 산이 합쳐진 것이다.
- 차가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다. 산 새가 처량하고 슬프게 소리 내고 있다.
해설하자면, 이러한 시가 된다.
그 당시 시대 배경을 생각했을 때, 문학적인 욕구를 표출하고 싶었지만 일제강점기로 활동이 어려웠고, 광복은 머나먼 꿈이었을 것이다. 새에 이입해 새가 지저귀거나 노래를 부르는 즐거운 소리가 아닌, 처량하고 슬프게 울고 있다고 한다.
◆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며', 어디서 많이 본 글 양식?
5연)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5연에서는 뭔가 조금 익숙한 구절을 만날 수 있다. 이 구절의 원본은 아래와 같다.
- 다정도 병인 양하여 -이조년의 <다정가> 중 일부-
이조년(1269~1343)의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로 유명하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는 무슨 뜻일까?
다정하다는 것은 정이 많다 혹은 정분이 두텁다는 의미다. 정분은 사귀어서 정이 든 정도 또는 사귀어서 든 정이라고 하는데, '정분나다'라는 단어가 있다.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의미이지만, 보통 바람 폈을 때 '둘이 정분났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부정적이다.
만일 나그네를 지칭하여 다정하고 한 많다고 표현했으면, 어떤 의미에서는 맞기도 하다.
본인이 여행객이 되어 국내 여행을 갔다고 생각하자. 다른 지역에 가기만 해도 길을 헤매거나 잘 모를 때, 누군가가 친절하면 마음이 사르륵 녹았다가, 불친절한 이를 만나면 몹시 원망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화나기도 한다.
해외라면 어떨까? 언어의 장벽과 인종 차별 등과 같은 문제로 화날 일도 많지만, 색다른 경험과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즐겁게 여행할 수도 있다.
당시 여행객도 물론 숙박비를 내고 머물 수도 있지만, 부족한 자금으로 현지인의 집에 머물거나 혹은 길거리(...)에서 지내는 배낭여행과 비슷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정도 많고 한이 많은 민족이라서 오뉴월에도 서리 친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나그네(여행객)가 되면서 여러 사람 만나 보니, 정도 많지만은 마음속에 끙끙 앓는 한도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마음도 있을 수는 있지만, 극과 극이다.
현대로 치면,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마음도 병이라고 하며, 이조년의 다정도 병에서 한 많음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밤에 걸음을 뗀 이유는 4연에 나온다.
◆ 어둑한 밤이라 길이 보이지 않을 텐데, 잠을 안 자고 길을 왜 떠났을까?
4연)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여행지는 계절마다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니 이 밤을 이 마을에서 머물다 가면, 다른 마을에 도착할 즈음에는 꽃이 져서 자신이 바라던 풍경을 구경도, 즐기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봄에 피는 벚꽃은 시간이 가장 중요한데, 봄비가 내리면 꽃이 다 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나그네는 밤에 자지 않고, 다른 마을로 여행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 것이다.
하지만 밤에 움직이기에는 너무나도 어둡다. 지금처럼 손전등이나 핸드폰이 있는 시대도 아니었을 테니까.
혹시 보름달이 떠오른 날을 보았는가? 시골에 가면 더 크게 느껴진다.
보름달이 있으면 어두컴컴한 밤을 밝게 비춰준다. 그래서 나그네가 달빛을 의지하여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흔들리며 간다고 표현했는데, 즐겁게 흥얼거리며 가는 것으로 보인다. 술 취해서 흔들리는 건 아니겠지...? 나그네는 수많은 경험을 안고, 풍류를 즐기며, 해가 진 어두컴컴한 밤을 홀로 떠난 것이다.
시를 해설할 때, 단어 하나하나 분석하려는 습관 때문에 해설이 많이 늦어졌다. 더군다나 윤동주 시인처럼 아이 같은 마음으로 시를 쓰기보다는, 풍류를 즐기는 청년 및 성인의 마음으로 써서 그런지 단어 같은 경우에도 현재 쓰는 단어와는 다른 단어들이 많이 나와 해설에 있어서 살짝 어려움을 겪었다. 다음에는 박목월 시인의 답가인 <나그네>를 해설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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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 프로그램 : 미리캔버스
- 사용된 폰트 : (한글) 마포꽃섬 / (한자) 조선궁서체
- 참고한 국어사전 : 네이버 국어사전
+2024.09.04 글꼴, 글씨 크기 변경 및 내용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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