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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 이형기 해설, 당신은 떠날 때를 아는가

한이 HanE 2023. 1. 3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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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 이형기 해설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분명 <낙화>라는 시를 쓴 시인들이 많았는데, 그중,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구절이 들어간 시가 뭐였더라, 하며 찾다가 찾은 시. 알고 보니, 다큐멘터리에서도 나왔던 낭만 어부에서 선장님이 읊은 시였다.


◆ 나는 떠나야 할 때를 분명히 아는가.

(1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 제목에서 나왔듯이, 낙화다.

 

  • 낙화 : 떨어진 꽃. 또는 꽃이 떨어짐.

 

 계절에 맞게 잠시 피어났다가 지는 꽃들. 시인은 떨어지는 꽃들을 보며, 시를 썼다.

 

 가장 아름답게 떨어지는 꽃은 아마 벚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시를 볼 때마다 벚꽃이 생각난다. 벚꽃은 만개할 때도 예쁘지만, 잎이 떨어질 때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사람 또한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정말 아름다울까.

 

 

 

◆ 떨어지는 꽃들과 함께,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2연)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 격정 : 강렬하고 갑작스러워 누르기 어려운 감정.

  기간이 어떻게 되든,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해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이별의 순간이 얼마나 강렬하고 갑작스러운지, 그리고 그 혼란스러운 감정을 누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다 큰 어른의 연애라고 다를 건 없다. 그저, 그 감정을 좀 더 숨길 뿐, 슬프거나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시인은 격정을 '인내한'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 아름다운 순간에 이별을 하는 우리

(3연)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 분분하다1: 분하고 원통하게 여기다.
  • 분분하다2: 매우 향기롭다.
  • 분분하다3 : 1. 떠들썩하고 뒤숭숭하다. 2. 여럿이 한데 뒤섞여 어수선하다. 3. 소문, 의견 따위가 많아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여기서 분분한 낙화에서 분분하다는 무슨 단어의 뜻일까. 2번도 되지만, 3번도 가능할 거 같다.

 

 

  1. '매우 향기롭다'로 해석할 경우

: 떨어져 가는 매우 향기로운 꽃들. 꽃들이 떨어지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2. '떠들썩하고 뒤숭숭하다'로 해석할 경우

: 떠들썩하고 뒤숭숭하게 떨어지는 꽃들. 꽃들이 떨어지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어느 것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의미가 가까울까?

 

 전자는 이 아름다운 분위기에 헤어지는 연인들의 분위기로 맞는 거 같고, 후자는 지금 헤어지고 있는 사람의 입장으로 잘 맞는다고 해야 할까. 기분이 뒤숭숭할 테니까.

 

  • 결별 : 1. 기약 없는 이별을 함. 또는 그런 이별. 2. 관계나 교제를 영원히 끊음.

  꽃들이 지는 것으로 생각했을 때, 아름답다. 보통 벚꽃이 지는 것을 생각할 때는, 썸(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몽실몽실한 느낌으로 지내는 관계)이나 연인들이 데이트 장소로 자주 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순간이 이별의 순간이라면?

 

 뭐랄까, 다른 사람들은 이 좋은 분위기에 연애를 시작하거나 썸을 타는데, '우리는 헤어지고 있어요'라는 느낌이랄까.

 

◆ 좋은 계절,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감정을 무르익혀야 할 때

(4연)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 무성하다 : 1. 풀이나 나무 따위가 자라서 우거져 있다. 2. 털이나 뿌리 따위가 엉킬 정도로 마구 자라 있다. 3. 생각이나 말, 소문 따위가 마구 뒤섞이거나 퍼져서 많다.

 벚꽃이 지고 난 뒤, 남은 것을 생각해 보자. 무엇이 남았는가? 무성한 잎들이다. 다른 꽃들을 생각해 보자. 사과나무나 배나무. 꽃이 지고 나서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러고 그 열매들은 씨앗으로 또 새로운 나무를 탄생시킨다(물론 쉽지 않다, 내 연애처럼...).

 

 그 열매를 위해, 아름다운 꽃은 죽고, 열매를 맺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고 한다. 사랑이란 것 또한, 마찬가지다. 다들 연애하면서 좋은 시간, 좋은 시절이 있다. 오래 사귄 연인이나 결혼한 부부들이 새롭게 탄생한 연인들을 보면 하는 말이 있다.

 

 "좋을 때다."

 

 어느 시간이든 나이든, 다 좋을 때지만, 그때만의 좋은 시간이 있다. 하지만, 이 시에서 시인은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라고 표현했다. 즉, 좋은 결말은 아니었다.

 

◆ 헤어지자, 너와 함께해서 행복한 나에게 있어서 가장 듣기 싫은 말

(5연)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헤어지자."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사귀는데, 갑자기 끝내자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이다. 붙잡아 보고 싶기도 하지만, 더 잡아도 결과가 뻔할 것이 보이니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 알기에 잡을 수가 없기도 하다.

 

 시에서는 꽃잎이 떨어지는 것과 같이, 사랑도 끝났지만, 화자와는 다르게 떠나는 게 쉬워 보이는 상대방은 인사하고 훌쩍 떠나버렸다.

 

 

남은 사랑과 이 이별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6연)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외국에서는 헤어져도 친구 먹고 그러던데 우리나라 정서상 그런 경우가 잘 없다. 있다 하더라도 한쪽이 감정이 남아있어서 그런 거니 뭐니, 말이 많아질 뿐, 깔끔하게 정리하는 편이다.

 

 샘터에 물 고인다는 것은, 눈물샘에 눈물이 고였다는 것이다. 이 슬픔을 눈물로 흘려보내기도 했다는 화자. 그만큼의 눈물을 흘린 후에야 사랑에 관해서도, 자아에 관해서도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기도 하다.

 

 이별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하진 못한다. 특히, 그것이 결별일 경우면. 슬픔과 분노, 원망도 섞여 있을 수도 있다. 만일 사람이 그러한 감정까지 가질 필요 없는 존재였다면, 뭐 하러 감정이 존재하였겠는가.

 

 


 요새 용어로 낭만 없이 말하자면,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땐 빠져라)라고 해야 할까. 헤어질 때도 깔끔하게 헤어지는 편이 좋긴 하다. 서로를 위해서.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헤어진 연인보다는 세상을 먼저 떠난 친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께서 위암 말기였다. 그 당시에 의사 말로는 바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통증이 극심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셨다. 진통제도 놓지 않고 할머니는 3주간 많은 사람들과 꼭 만나야 할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떠나셨다. 우리가 간병을 하다가 간병인도 구했지만, 주머니 사정이 복잡해지기 전, 할머니는 떠났다. 처음에는 너무 빨리 떠나셔서 야속하기도 했지만, 할머니도 다 아셨지 않았을까. 자신이 지금 떠나야 한다는 것을...


- 편집 프로그램 : 미리캔버스

- 글꼴/폰트 : 나눔손글씨 달의궤도

- 단어 사전 :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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